제 목 : 엄마의 눈물 | 조회수 : 1339 |
작성자 : master | 작성일 : 2009-10-12 |
내가 독감을 심하게 앓았을 때였다. 꼼짝 못하고 온종일 방 안에만 누워 있던 나는 엄마가 떠주는 밥마저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 물만 마셔대고 있었다. 저녁 무렵 겨우 정신이 들자 나는 갑자기 빵이 먹고 싶어졌다. 당장에라도 엄마한테 빵을 사 달라고 조르고 싶었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순간 나는 빵을 먹을 수 있는 묘안(?) 하나를 떠올렸다. 그것은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면서 엄마한테 빵이 먹고 싶은 내 마음을 넌지시 전하는 것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애플빵, 애플빵은 서울빵.” 그날 저녁 나는 쉬지 않고 거의 몇 시간 동안 그 노래만을 불렀다. 그런데 엄마가 주신 것은 빵이 아닌 매였다. “철환이 너, 지금 왜 맞는 줄 알지?”
“네……. 엄마가 돈 없는 줄 알면서 빵 사달라고 졸라서요.”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울먹거렸다.
“아니야, 넌 아직 어리니까 빵이 먹고 싶으면 조를 수도 있어. 하지만 손님이 계신데 그러면 엄마가 뭐가 되니? 자식 잘못 가르쳤다고 손님이 얼마나 흉을 보겠어, 응?” 독감 때문에 하루 종일 앓았던 나는 매를 맞고 자리에 누워 연신 눈물을 흘려댔다. 왠지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서였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서까지도 나는 엄마가 너무나 미워 엄마에게 등을 돌린 채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는 밤만 되면 신경통으로 끙끙 앓으셨는데 그날 밤만은 엄마의 앓는 소리도 아프게 들리질 않았다. 며칠 후였다. 엄마가 난데없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녹슨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거였다. 게다가 엄마의 얼굴 한 쪽엔 붉은 피멍이 들어 있었고 목도 불편해 보였다. 엄마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에게 애플빵을 하나씩 나눠주셨다.
“어서 먹어라, 우리 막내 이 빵 먹고 싶어 했잖아.” 종아리엔 여전히 매 맞은 자국이 푸르게 남아 있었지만 철없던 나는 엄마가 준 빵을 손에 들고 키득거리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는 빵과 함께 돼지고기도 사왔기에 그날 저녁, 우리 식구는 몇 달 만에 고기를 맛보며 너무나 행복해했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아주 모처럼만에 삼겹살을 구워 주셨다. 잘 구워진 삼겹살을 내 수저 위에 올려 주던 엄마는 그동안 마음속에 꼭꼭 감추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셨다.
“우리 막내, 엄마가 예전에 애플빵 사다 주던 날 기억하니?” “애플빵?” “왜, 엄마 얼굴 다쳐서 들어온 날 말이야.” “아! 그날…….”
“사실은 그날 말이야, 엄마가 길에서 넘어져서 다친 게 아니었어.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버스기사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그만 넘어졌지 뭐야. 그러다 의자에 얼굴을 부딪치게 된 거고…….”
엄마는 쓸쓸한 표정을 짓고는 잠시 뒤 말을 이었다. “고맙게도 운전기사 아저씨가 자기 부주의라며 버스회사가 있는 종점까지 엄마를 데리고 갔지. 그리고 담당자한테 말해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더구나. 그래서 엄마가 간곡히 부탁을 했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돈을 조금 달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꼭 병원에 들러야 한다면서 돈을 조금 내주는거야. 그래 그 돈으로 너희들한테 먹일 빵하고 고기를 사 가지고 왔던 거지. 그렇게라도 빵을 사 줄 수 있어서 그때 엄마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니? 고기를 보니 문득 그날이 생각나는구나.”
엄마의 두 눈은 어느새 붉게 노을져 있었다. 속상함을 못 이겨 나는 성을 내듯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왜 그랬어, 엄마! 많이 아팠을 텐데…….”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알게 될 거다. 자식이 먹고 싶어 하는 빵 하나 사 줄 수 없는 어미의 맘, 그게 얼마나 가슴을 찢는 일인지를 말이다.” 띄엄띄엄 말하는 엄마의 눈에 다시 물빛 무늬가 아롱거렸다. 하지만 나로서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부모는 자신의 아픔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가르친다는 것을…….
『행복한 고물상』이철환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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