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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천하무적 김민규!! 조회수 : 1737
  작성자 : master 작성일 : 2009-10-08

작년 11월이었다. 가을에 들어온 우리 1년차뿐만 아니라 모든 소아과 레지던트들이 싸늘한 늦가을 날씨 덕분에 부쩍 늘어나는 환자에 헉헉대던 무척 바쁘던 날이었다. 2개월이 갓 지난 아기가 우유가 폐에 흡입이 되어 숨을 못 쉰다고 응급실로 왔다. 아기가 파랗게 질려 숨쉬기 힘들어 보여 인공호흡기를 달았다며 동기인 박현주 선생이 한참 걱정을 하면서 보여준 가슴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왼쪽 폐의 1/3 정도가 흡입된 우유로 인해 짜부라져 있었다. 흡입성 폐렴은 시간이 지나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 찍은 엑스레이에서도 역시 더 심해진 양상을 보였다.

  

“오늘 당직 만만하진 않겠군. 오늘 밤새야 하겠네…” 하는 걱정과 함께 들어선 중환자실에서 민규를 처음 보았다. 한참 힘들어하며 죽어가는 아가의 모습일줄 알았는데…, ‘어라?’ 아기가 나를 보고 방긋 웃는 것이었다. 물론 간간히 폐렴 때문에 숨쉬기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너, 아픈 거 아니었냐?…”하고 물어야 할 정도로 간간히 웃어주고, 금식 때문에 배고프니 우유 달라고 보채기까지 하는 그런 씩씩한 아가였다. 죽음과 삶의 사이에서 가느다란 줄타기를 하는 민규는 어쩌면, 밤을 새고 항상 고민을 해야 하는 윌 소아과 레지던트와 교수님보다 더 씩씩한 아가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주 오랜 시간을 민규는 인공호흡기를 달아야했고, 그렇게 웃기 좋아하는 민규의 모습과는 달리 쉽게 나아지지 않아 민규는 중환자실에서 100일을 맞았다. 민규 머리맡에 차려진 백일상. 미역국과 하얀 백설기떡까지 준비된 중환자실레서의 민규의 백일상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렇게 챙겨주면 나을 것 같아서요…”하면서 민규 어머니께서 주신 백설기는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민규는 3개월이 넘는 긴 시간을 잘 이겨내고 원래의 토실토실한 아기로 돌아왔다. 저산소증으로 뇌손상을 받았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뇌파나 뇌 초음파 소견도 정상이었으며, 집으로 산소치료기를 가져가야 했지만 결국은 그것마저도 떼고, 가슴 엑스레이사진도 정상이다. 지금은 거의 병원을 오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해진 기적을 만들어 낸 아가이다.

  내 핸드폰에는 간간히 민규 엄마가 보내주시는 민규의 소식이 저장되어있다. 5개월이 넘어가던 민규가 배밀이를 하며 방바닥을 닦고 다니는 모습…, 보행기를 타고 후다닥 달려가는 모습…, 소심하게 잼잼이를 하는 8개월 된 민규의 모습….

 

  엄마들은 많은 기적들을 만들어낸다. 1000그램이 조금 안 되는 아기가 달고 있는 인공호흡기 위에는, 얼른 나아서 걸음마 하자고 엄마가 올려놓은 꼬까신이 함께 응원을 하고, 700그램도 안 되는 아기가 위험했을 때 최악의 상황의 가능성을 무척 힘들게 설명하던 나에게 “그래도 아기가 발가락을 꼬물거려요…, 잘 될 것 같아요…”하고 인큐베이터를 보면서 아기에게 웃어주던 엄마. 3개월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로 있었던 아이 앞에서 한 번도 울지 않고 웃으며 기도와 응원을 했던 엄마. 물론 그 뒤에는 수많은 눈물이 있었겠지만, 아기 앞에서 항상 웃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하고 아름다운 엄마들의 아기들은 결국은 나에게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이런 보석같은 아기들과 엄마들이 만들어가는 많은 기적의 순간들을 옆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매순간들이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간들의 연속이며, 퇴원하며 방글방글 웃으면서 나가는 모든 아기들과 엄마들이 나에게는 모두가 잊을 수 없는 환자들의 연속이다.

 

김사라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소아청소년과 4년차

 

(※ 김민규 아이는 양지연 자매님의 아들입니다. 기적의 아들이며, 예명을 모세라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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