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그날 밤에 주께서 말씀하시다 | 조회수 : 1235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08-11-25 |
복음에는 고난이 따른다. 고난 없는 복음이 있을까? 복음을 가진 자에게는 거룩한, 순결한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열심과 열정이 그의 삶을 이끈다. 죽음도 삶도 모든 중심이 하나님의 중심으로 선다. 타협이 없다. 복음 앞에는 두려움도 없다. 어디서 큰 힘이 나오는지 강력한 힘과 능력이 솟아 오른다. 자신도 모른다. 생각지도 않았던 언어, 표현, 은혜가 언어와 삶속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직 복음,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은혜....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 섬김의 삶, 좁은 길, 좁은 문으로 산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어떠한 대가라도 치른다. 그 안에는 눈물과 감격이 가득 찬다. 바울은 공회 유대인의 산헤드린 법정에서 예수님을 증언한다.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종교, 하나님의 이름으로 종교의 영, 종교의 이름으로 바울을 무조건 죽이려고 하는 사단의 간계! 종교의 영속에 그들을 움직여 복음의 사람 바울을 몰아붙이면서 죽음으로 몰아붙인다. 산헤드린은 71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입법, 사법권을 가진 의회이다. 이스라엘 국회요 최고의 법정이다. 산헤드린 의회는 예수님도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으시고 죽으셨다. 오직 바울에게 죽음을, 오직 사형선고를 외치는 군중의 함성소리는 미치광이, 광기적인 법정이었다. 도와 줄 사람 없는 곳, 아무도 없는 외로운 재판이고 이성을 잃은 장소였다. 철저히 동족으로부터 버림받은 곳, 산헤드린! 이 공회의회에서 외친 바울은 사단의 말이 아니요 예수님의 성령의 말씀이었다. 강력하고 담대함, 그는 빛과 기름부음의 말로 그들에게 “나는 지금까지 언제나 양심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외친다. 멋있지 않은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숨 건 복음이었다. 옛적 바울이 거듭나기 전에 바울의 폭군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산헤드린 공회 의회에서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할 때 천사의 모습이었다. 그 때 바울의 모습은 광기였고 인간 백정이었다.살인마의 얼굴이었다. 그 안에 하나님도 성령님도 율법도 없는 이성을 잃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바울이 복음 때문에 죄인의 몸으로 그 법정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들을 향하여 너희들의 모습은 속은 썩은, 하나님이 없는 종교의 하나님을 믿고 율법의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이 가련하고 불쌍하다고 죄인 바울이 담대하게 외친다. 바울의 당당한 모습, 복음의 능력으로 주변을 압도해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세운 영적 권위로 진리가 승리하는 장면이다.
복음 앞에는 그 어떤 것도 타협이 될 수 없다. 교회의 능력이 여기 있다. 통례에 의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교회의 등급을 C-로 취급한다.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한 가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진리의 기둥인 교회! 진리의 사수! 이것은교회의 생명이다. 생명의 대가 치름이 절대로 필요로 한다. 진리는 능력이요, 생명이요, 권세이다. 때론 외롭고 고독이고 고난이요 죽음도 따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예수님은 칠흑 같은 어두운 절망의 밤에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담대하라”한마디였다. 그리고 로마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망을 잃지 않고 몸부림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서 용기를 주시면서 꿈을 주신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절망은 죽음이다. 마지막에 웃게 하시는 벼랑 끝에서 주를 보아야 한다. 주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염려는 사탄이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고 기름부음을 더하여라. 십자가 능력을 외치라. 크게 자유를 외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작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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