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신수성가(神手成家) | 조회수 : 1472 |
작성자 : master | 작성일 : 2010-03-30 |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세기49:22)
1904년 봄 낯선 서양의 젊은 선교사 테이트가 전라북도 김제 금산면 시골에서 전도를 시작하여 이 고장 유지인 조덕삼 씨를 전도했다. 1908년 교인이 200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금산교회는 교회당을 짓기로 하고 지금의 ‘전라북도 문화재 제 136호’ 교회당을 짓게 된다. 그 때 조덕삼 성도가 전적으로 건축을 위하여 재산을 헌납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돈으로 약 6억원의 건축비라고 한다.
조덕삼은 대대로 지주이자 유교에 투철한 보수집안이었지만 스스럼 없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 청년과 함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교회가 커져서 한분의 장로를 피택하게 되었을 때, 주인인 조덕삼 성도와 마부인 이자익 청년이 함께 나섰는데, 주인은 떨어지고 머슴인 이자익 청년이 금산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다. 조덕삼 성도는 이것도 모두 하나님의 결정이라며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열심히 받들었다.
교회에서는 이자익 장로의 설교를 듣고, 집에 와서는 다시 주인과 머슴의 자리로 돌아와 충실히 종사했다. 그 뒤 이자익 장로는 조덕삼 장로의 지원으로 평양신학교를 나와 한국교계의 거목이 된다. 이자익 목사는 경남 남해 출신인데 집안이 어려워 전라도 지역으로 와서 조덕삼 장로를 만나게 되고, 호남지역에서 하나님 일에 일생을 바치다가 1958년 3월 김제 원평에서 생을 마치셨다.
조덕삼 장로는 지주이자 사업가로 지역의 부호였는데 복음을 접한 후에 그의 생애는 일대 전환이 일어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업이라며 교회 일에 몸 바쳐 충성했다. 1919년 봄 3.1운동에 참여하고 그해 12월 찬송을 부르며 생을 마감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의 이야기 가운데 오늘날 이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신수성가 축복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조덕삼 장로의 손자 조세형 장로는 지금까지 금산교회를 섬기며 정치인으로서 5선 국회의원을 했으며 주일대사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리고 이자익 목사의 손자 이규완 장로는 대전 대덕연구원 공학박사이며 연변과기대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00년전 그들의 뜨거웠던 믿음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문을 세우시는 멋진 신수성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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