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홈  >  소식  >  자유게시판
  제  목 : 달맞이꽃 조회수 : 1282
  작성자 : master 작성일 : 2009-10-21

 우리 동네에 말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돌산 아래 얼기설기 엮어 놓은 무허가 판잣집에 사는 그녀를 아이들은 벙어리라고 놀렸다. 그녀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이집 저집 구걸을 하고 다녔다. 그녀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집 밖 출입을 하지 않았고 늘 집에서만 지냈다.

 

  어린이 날이었다. 엄마가 준 돈으로 나는 형과 누나와 함께 만두를 먹으러 만두집으로 내려갔다. “조금만 기다려라. 찜통에 넣었으니까 만두 곧 나올 거야.”

  우리는 한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만두집 아저씨가 커다란 무쇠 찜통 뚜껑을 들어 올렸다. 입을 꼭 다물고 노란 천위에 앉아 있던 조그만 만두들이 일제히 김을 피워 냈다.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자, 만두 나왔다.”

  아저씨는 플라스틱 접시에 만두를 담아 윌 테이블로 가져왔다. 그때 만두집 출입문이 다르르 열렸다. 벙어리 여자였다. 다른 날과는 달리 그녀는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벙어리 여자는 만두집 아저씨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바닥의 꼬깃꼬깃한 돈을 보이면서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세 개 달라고요?”     “…….”     그녀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개는 안 파는데.”  목소리는 냉랭했지만 주인 아저씨는 예의 사람좋은 표정으로 슬쩍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쪽 자리에 앉아요. 오늘은 어린이 날이니까 만두 한 접시 그냥 드릴게.”    머쓱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옷섶을 만지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 후 그녀가 앉은 테이블 위로 만두 한 접시가 놓였다.

“아가야, 몇 살이니?”     “일곱 살이요.”     “참 예쁘게 생겼구나. 많이 먹어.”     “네.”

아이는 맛있게 만두를 먹었다.     “엄마도 먹거, 맛있어.”

  아이 엄마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아이가 만두 한 개를 집어 엄마 입으로 가져갔다. 만두를 먹는 그녀의 눈가가 이내 붉어졌다. 만두를 먹ㅇ츤 후 그녀는 아이와 함께 조용히 만두집을 나갔다.

 

  만두를 먹고 타박타박 집으로 올라가는데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먼발치에서 들려왔다. 조붓한 골목길을 겅둥겅둥 뛰며 아이들은 무언가 놀림감을 발견한 듯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벙어리래요, 벙어리래요. 말 못하는 벙어리래요.”     아이들은 이기죽거리며 잘게 부순 연탄재를 아이 엄마를 향해 던지고 또 던졌다. 그녀는 땅에 조그려 앉아 딸아이를 품속에 꼭 끌어 안았다. 그녀의 머리와 등 뒤로 연탄가루가 하얗게 부서져 내렸다.

“엄마, 무서워……. 엄마, 무서워……”     놀란 딸아이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저며 왔다. 형과 나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윌는 먼저 가까운 곳에 쌓여있는 연탄재를 하나씩 통째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목청을 높이며 제일로 들까불던 아이 앞에 섰다.

“인마, 이제 그만해. 더하면 이 연탄재를 통째로 날려 버릴 거야.”    아이는 내가 들고 있던 연탄 크기에 금세 기가 죽어 버렸다. 깨금발로 뛰면서 찧고 까불던 다른 아이들도 비슬비슬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해 여름 산동네에는 뒤숭숭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벙어리라고 놀리던 그녀의 어린 딸이 열병을 앓다가 끝내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아이 엄마도 돌산 벼랑으로 몸을 던졌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가…….

  모녀가 떠나 버린 뒤 그들이 살던 무허가 판잣집 앞에 달맞이꽃 두 송이가 남실남실 피어났다. 함초롬히 이슬을 머금은 달맞이꽃은 밤마다 노란 얼굴을 달빛에 적시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녀의 어린 딸은 흑인 혼혈아였다.

 

 『행복한 고물상』이철환 글 中...

 

 "

  이전글 : 드디어 인터넷이 개통되었습니다!
  다음글 : 창립 14주년, 여호수아 14장, 14명의 임직 예배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